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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메시지! - Part 2

II.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무엇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세상의 삶과 방식, 가치와 태도, 사고와 신념을 본받으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로, 옷은 입어야 합니다. 요점은, 어떻게, 즉 어떤 마음으로 옷을 입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경을 기준/표준 삼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기준 삼습니까? 세상 유행을 따릅니까, 아니면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하나님/말씀 중심입니까? 누가, 무엇이 중심/표준입니까?

여러분 교회 성도들이 세상 식으로 옷을 입어도 되겠습니까? 옷을 세상 식으로 입는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이 우선합니까? 주님인가요, 세상인가요? 세상가치관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의 교훈이 먼저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준/표준이 세상입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까? 세상이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교회도 동성애를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새로운 가치를 강조한다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세상을 따라 살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당연한 이것을 알리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참 처량합니다! 그리고 알리고 가르쳐 줘도 순종할까요? 아니면, 마음을 닫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옛날 우리 선배들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설교하면 그들 가운데 양심에 가책이 되서, 양심이 있으니까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대답해요! 이 말은 세상이 간음을 행하면, 교회성도들도 간음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 줄 믿습니까? 세상을 사랑하다보면, 귀신들에게 끌려가게 됨이 깨달아집니까? 꽃다운 청춘들이 왜 나약해져 정신질환자가 되며, 귀신에게 사로잡혀 가는지 이해가 됩니까?

이 꿈을 꾼 후, 처음에 저는 한 교회, 어떤 교회만 그렇겠지 믿고 싶었습니다. 다른 교회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이 세력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세상/악을 선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과 주변 분위기 안에서 익숙해 졌습니다! 세상적 성공이 머리에 인박혀 있습니다! 광야 생활은 실패로 교육받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성공은 부모와 교회로부터 배척당했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사실을 직면하자면, 앞으로 제 사역이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저의 사역이 이것이다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을 두고 다투는 사단과의 전쟁! 이 부담이 있습니다! 세상 사랑을 선택하는 자아의 세력들과 하나님 중심의 십자가와 제자도로 돌아오라! 외침!

지금은,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교회도 은근히 부추기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때에, 이것을 회개시키고, 책망시키려면 얼마만한 저항을 예상해야 하겠습니까? 회개할까요? 이 세상을 사랑한 죄를 회개할까요?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도 않는 세상 가치관과 태도를 추구하기 위해 전심전력해오지 않았습니까?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세상 복을 달라며, 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주신 복/성공도 아닌, 세상의 복/성공을 구해오지 않습니까?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및 이생의 자랑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않음을 몰랐다면, 지금도 그런 죄를 사랑하며, 결국 귀신들에게 끌려갈 것입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지금, 선택하십시오!

III. 꿈에서 깬 후, 다시 현실세계로 (눅 16: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사실들(facts)을 보십시오. 세상원리에 따르면, 이것들(생각들)이 매우 일반적이고 상식적입니다. 세상 관점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1. 부자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이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면, 먼저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단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맡겨주신 것입니다. 청지기 직분과 사명이 있습니다. 금세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와 같은 교훈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돈을 벌었고, 그 은사를 사용하여 부자도 되고,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합니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의 확장을 위하여 섬기며, 내어드리고, 구제하여야 합니다. 영광중에 심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칠 때, 죽은 후에 이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하나님은 참 공평하십니다! 고난 받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2. 한 거지가 그 부잣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먹다 남은 음식찌끼로 생활하였습니다.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가난한 자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두 사람 모두 죽었습니다.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죽습니다.

4. 음부(Hades(헬라어)/황천)가 있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했습니다. 음부/하데스(혹 황천)은 지옥이전의 장소라고 부릅니다. 지옥은 더 심각합니다. 여러분, 누구도 지옥에는 가지 마세요! 물론, 황천도 가지 마세요! 제가 이번에 방문한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그렇죠? 그렇지만, 저도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음부가 있는 산 - 그 산의 기슭에 바로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슭에 세상이 있는 산입니다. 음부는 그 산의 허리와 정상부분에 있습니다! 세상의 산이 있듯이, 하나님의 산(여호와의 성산)도 있습니다! 그 산의 기슭에서 산의 허리부분을 지나,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기슭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5. 음부는 고통의 장소이다!

음부가 있습니다! 음부에는 물도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음부에서는 낙원(아브라함과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구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음부는 지옥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이 중요합니다.

6. 아브라함의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네가 받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으로,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질문이 이면에 들어 있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너는 사랑을 배웠느냐? 우리는 무엇으로 섬기는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으로, 무엇을 합니까? 사랑을 실천합니까, 아니면 나/우리 집만 좋은 것으로 배불립니까,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웃을 돌보십니까?

나사로가 받은 고난의 뜻은 무엇입니까? 영어성경,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and likewise Lazarus evil things; 이 말은, 나사로가 악한 것들-악의 공격들-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고난만 당했다!입니다. 그러나 그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왜 악의 공격을 받습니까? 세상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사로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함으로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음으로 정결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훌륭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보지 못한 요점입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마음/중심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고난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고난을 받아 온전해졌습니다. 히 2: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5:8/“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모세는 세상 즐거움보다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히 11: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세상에서 고난당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친구입니다!

7. 죽은 후 음부에서 고통중의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구한 것과 아브라함의 응답: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죽은 후 고통 중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자신은 비록 이곳에 있어도, 아직 살아있는 동생들 5명은 그곳에 오지 않기를 원합니다. 지극히 당연하죠! (자신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안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를 일으켜 세상으로 보내 이런 곳이 있음을 알려줘, (동생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세상에서 살고있을 때에 과거의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형제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산자는 살아있을 당시의 현재적 모세와 선지자들을 듣지 않으면,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사실입니다. 에서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같은 차원에서 다음 구절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결론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이후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헌신하여 드림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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