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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마음의 돌파를 위한 기초 (히 6:18-20)

무엇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을 초청하였는가?

어머니 하갈의 눈물인가, 아니면 아이 이스마엘의 (신음)소리였는가?

하나님의 관심이 갔던 것은 어머니 하갈의 눈물이 아니라, 죽어가는 이스마엘의 신음하는 소리였다. 하나님의 눈길은 언약의 자손을 향하여 계십니다. 죽어가던 이스마엘의 작은 신음소리를 들으신 주님께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당장에 필요한 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언약,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힘을 얻고, (마음이) 변화를 받아, 하갈 자신의 마음(심령)의 눈이 밝아지었습니다. 이것 일은 환경에 무슨 변화를 시키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다니...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그 우물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는데) 다른 차원에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즉 휘장 넘어 저편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편에 존재해 있었지만, 마음의 눈, 심령의 눈이 어두워 못 보았고, 내가 있는 이 땅에 존재하게 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시니까, 저편에 있던 것이 마음의 눈을 통해 보였던 것입니다. 순간 내 쪽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왕하 6:17, 본문을 보면, 엘리사 선지자는 물질계에 있으면서 이미 천국을 보았고, 이 천국을 자신의 몸이 있는 자연계로 당겨 존재하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권능, 기름부으심을 통해 천상의 이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젊은 사환은 못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스스로 고통 /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환이 보든지 못보든지, 영적 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눈이 열리기 전에는 자기만 못 보았고, 그래서 고통스러웠을 뿐입니다.

이것입니다. 눈이 열린 자는 보고 평안을 누리고 있고, 눈이 열리지 못한 자는 상대적으로 고통 속에 삽니다. 현실세계에 이미 와 있는 초자연적인 세계, 하나님의 왕국을 못 봄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계, 물리적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어느 영역에서 살고 있는가? 앞으로 어느 영역에서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모든 공급이 예비된 영역이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나 재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있었던 것과 같은 부요함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여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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